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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소통(疏通)
  • 이윤낙 발행인
  • 등록 2023-02-27 18:46:38
  • 수정 2024-02-28 16: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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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영화 ‘타잔’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근육질의 잘 생기고 날렵하고 힘이 쎈 주인공과 그의 아름답고 교양 있는 애인 ‘제인’, 특별한 우정의 동물 친구 ‘치타’가 등장하는 이 영화에서 타잔은 동물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그래서 위기가 닥치면 여러 동물들의 도움으로 벗어나 해피엔딩으로 끝낸다. 이 영화를 보면서 실제 동물과 인간 사이에 대화가 가능하다면 어떠할까 생각한 적이 있다. “잘했다. 치타”, “뭘요 타잔”

 

어린 시절 고향에서 소에게 풀을 먹이려고 들과 산으로 다녔다. 소와 단둘이 있다 보면 무료해 이런 저런 혼잣말을 주절거린다. 그런데 한참을 혼자 중얼거리다 보면 어느 순간 풀을 뜯던 소가 큰 눈망울을 꿈뻑이며 바라본다. 혹여 내 말을 알아듣고 대답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내 생각을 말로 전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참 답답해요”

 

중국에 처음 왔을 때 필자는 중국어를 못했다. 아는 말이라고 ‘셰셰’, ‘뚜이부치’ 등 간단한 말이나 이 얼 싼 쓰 같은 숫자 정도였다. 그러니 중국인들과 미팅이나 식사 자리에서는 그야말로 귀머거리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다. 답답한 마음에 옆에 앉은 통역에게 자꾸 물어본다. “도대체 뭐라는 거야?” 

미팅에서 3-5분 길게 얘기하면 통역은 1분도 안 걸린다. “왜 그렇게 짧아? 내 말을 잘 전한 거야?”, “중국어는 간단해요”

 

특별히 인간은 대화를 즐긴다. 인간이 유일하게 말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대화는 사람과 집단, 민족과 국가 등의 정체성을 구성한다. 개인, 가족, 친구, 지역, 학교, 직장, 취미 공동체, 종교 공동체, 국가 등 다양한 영역에서 펼쳐지는 관계를 형성하기도 하고 분쟁도 해명도 한다. 대체로 상호 결합하는 가운데 확장되나 경우에 따라 서로 충돌하기도 하며 오해와 분노를 일으켜 전쟁을 야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는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유익할 때도 있다. 장인어른께서 노년에 귀가 어두워지셨다. 답답하지 않으시냐고 했더니, “쓸데없는 말을 듣지 않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

 

하지만 인간은 대화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유는 대화가 사람과 사람, 집단과 민족, 국가 사이에 있는 문제에 대해 질문과 답을 하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대화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알고 해석하고 수정하고 타협과 일치를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끝없이 대화를 통해 상호 욕망을 충족한다. 대화에 수반되는 한 가지는 기억이다. 기억이 소멸된다면 대화를 하더라도 소통은 어려워진다. 그런데 많은 경우 과거에 대해 기억하지 못하거나 거짓말을 한다. 불의한 자들과는 대화가 어렵다.

 

요즘 세태는 ‘소통의 부재’, ‘불통의 시대’이다. 중국에 살면서 중국어를 모르는 사람은 중국인과 대화가 안된다. 대화를 못하면서 그들을 상대로 사업을 하는 것은 말을 못하는 아이가 사업을 하는 것과 같다. 언어를 몰라 직접 소통을 못해 통역을 통하는 것은 불편한 뿐만 아니라 많은 착오를 한다. 물론 언어는 노력해 배우면 소통이 가능하다. 그러나 고집과 아집으로 자기 주장만 반복하는 불통의 경우는 백약이 무효이다. 이런 사람이 주위나 공통체에 있다면, 특히 그 사람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책에 있다면 그 조직은 심각한 분란과 고통을 겪을 것이 자명하다. 지도자의 소통은 최고의 덕목이다.

 

대화는 말로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고 이해하는 활동이다. 대화는 쌍방향으로 행해져야 소통이 된다. 일방적인 경우는 대화가 아닌 명령이나 훈계다. 상대방의 생각과 입장에 대해 충분히 청취하고 자기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알아듣게 잘 전달함으로 합의점을 도출해내는 성숙한 대화 문화가 형성되어 있는 사회라면 갈등과 오해의 폭은 훨씬 좁혀질 것이다.

 

인간이 동물과 대화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타국 언어를 배우지 않은 사람이 외국인과 대화를 통해 협상하고 교제하는 것 역시 어렵다. 하지만 문화와 역사를 공유하는 국민이 같은 언어로 대화를 한다면 풀리지 않을 문제는 없다. 확증 편향에 매몰돼 아집으로 상대를 적대시하며 소통하지 않는다면 분쟁은 불가피하다. 이런 유아독존 불통의 사람이 지도자로 있으면 그 공동체는 조용한 날이 없다. 남북이 분단된 것도 모자라 지역이 나뉘고 진영이 대립하고 세대가 갈등하는 현실은 소통의 부재 때문이다. 상대를 인정하고 협상하려는 자세가 있다면 해결치 못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모두가 허심탄회한 대화와 소통으로 국민 통합에 적극 나서야 한다. 나라가 편안하고 행복해지려면 말이다. [더플라자글로벌=이윤낙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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