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이양 도시 야경
베이징과 상하이, 선전에서는 여전히 ‘996 근무제(오전 9시~오후 9시, 주 6일)’가 암묵적인 노동 표준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서남부 내륙의 구이저우(貴州)성에서는 이와 전혀 다른 삶의 리듬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경쟁과 과로를 거부하며, 웃음과 여유, 삶의 질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중국 SNS를 통해 퍼지며 구이저우는 지금 ‘반(反)인벌루션’의 상징적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의 SNS 플랫폼 ‘비주얼 크로니클’에 게재된 르포 <그늘에서 멀리>는 이러한 구이저우의 삶의 방식에 주목했다. “일단 일하러 가면 기질이 바뀐다”는 도시 직장인의 한탄과 달리, 구이저우 사람들은 삶 그 자체에 기분 좋은 긴장을 품고 살아간다.
거리에서는 누군가 전기오토바이를 타고 천천히 지나가고, 공공 벤치나 계단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들에게 ‘롤링(Rolling)’이나 ‘질링(Drilling)’ 같은 경쟁적 노동의 언어는 낯설다. 그들은 단순히 “앉을 수 있으면 절대 서지 않고, 누울 수 있으면 쪼그리지 않는다”는 철학을 따를 뿐이다.
야외 마작을 즐기는 주민 — 촌락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시민 사회의 오락 모습이다.
구이저우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인생을 희생하는 것’을 의심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지금 웃고 있는가’, ‘오늘 저녁에 친구와 마작 한 판 할 수 있는가’다. 성도(省都)인 구이양(貴陽)에서는 거의 모든 가정이 자동 마작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퇴근 후 마작은 그들에게 스트레스 해소이자 사교의 수단이다.
인터넷에서는 “사장이 기분이 안 좋으면 요리는 손님이 한다”, “퇴근 시간이 되면 주인은 ‘불 끄고 나가세요’라고 말하며 퇴근한다”는 일화들이 구이저우식 유머로 퍼지고 있다. 한편, 거리의 노점상과 스낵바는 새벽 4시까지도 영업하며, 늦은 밤에도 도시 곳곳에는 사람과 불빛이 넘친다.
이곳의 사람들은 날씨에도 개의치 않는다. 갑작스레 쏟아지는 소나기에도 비닐봉지 하나만 머리에 쓰고 길을 걷는다. 거리의 바비큐 테이블은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려도 그대로 유지되며, 웃음과 담소가 멈추지 않는다. 도시의 삶에서 ‘비’는 귀찮고 불편한 요소일 수 있지만, 구이저우에서는 풍경이고 생활의 일부다.
이러한 정신적 이완은 외지인들에게 일종의 문화적 충격을 준다. 경쟁사회에 익숙한 이들이 처음 이곳을 찾으면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나?”라는 당혹감을 느낄 정도다. 하지만 오래 있지 않아 모두가 말한다. “여긴 좀… 괜찮다.”
구이양 야시장 전경
전문가들은 구이저우의 이런 독특한 분위기가 지리적 특성과 사회경제적 배경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중국 남서부 내륙의 산악 지대에 위치한 구이저우는 대도시처럼 빠르게 성장하거나 치열하게 경쟁할 필요가 없었다. 평균 소득은 중국 내 중하위권에 속하지만, 행복도와 삶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한편, 최근에는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이 오히려 디지털 콘텐츠, 관광, 로컬 문화 브랜드 등으로 전환되어 새로운 경제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인벌루션에서 벗어난 지역이 결국 사람들을 가장 끌어들이는 곳”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야시장 내 스낵 포장마차
구이저우의 삶은 오늘날 중국 청년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일하고 있는가?”, “행복은 언제 시작되는가?”, “누가 정한 기준에 맞춰 살고 있는가?”
중국의 대표 도시들이 성장과 효율을 강조할 때, 구이저우는 느림과 휴식을 미덕으로 삼는다. “돈을 버는 것보다 오늘 하루 웃고 잘 자는 게 더 중요하다”는 그들의 철학은, 단순한 풍속이 아니라 시대를 반영하는 깊은 저항의 메시지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