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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힘의 논리로 포장된 '상호관세', 공정은 어디에 있는가
  • 이윤낙 발행인
  • 등록 2025-07-16 12:5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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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식 자본주의의 민낯... 지배와 착취

7월 9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 국빈식당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서아프리카 5개국 정상들과 다자 오찬을 진행하고 있다. ⓒ 백악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일 뉴스의 중심에 있다. 그가 휘두르는 ‘상호관세’의 칼날은 냉혹하고도 계산적이다. 한 마디로  그가 주창한 ‘상호관세’는 공정의 외피를 쓴 착취의 도구에 불과하다. 상호관세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도구다. 어린아이와 성인이 같은 규칙으로 링에 올라 싸우는 격으로, 처음부터 결과는 정해져 있다.

경제 대국인 미국이 저개발국과 동일한 조건을 요구하는 순간, 그것은 평등이 아닌 착취가 된다. 정치철학자 존 롤스는 진정한 정의란 가장 불리한 사람들에게 최대 이익을 주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했다.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이에 정면으로 맞선다.

기울어진 판 위의 '공정'

국제무역의 현실은 처음부터 평평하지 않다. 자본과 기술, 제도까지 모든 측면에서 우위를 점한 미국이 '상호'를 말하는 순간, 그것은 협력의 언어가 아닌 권력의 명령이 된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에 따르면, 세계 자본주의는 중심(core), 반주변(semi-periphery), 주변(periphery)으로 나뉘며, 중심국은 주변국의 자원과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흡수해 자신들의 부를 강화한다.

트럼프가 추진한 상호관세는 이 구조를 '공정'이라는 포장지로 감쌌을 뿐이다. 규칙이 같다고 해서 경기장이 공평해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관세는 가난한 나라에게는 생존의 위협이지만, 미국 기업에겐 비용 조정에 불과하다.

이런 구조 속에서도 기득권층은 여전히 말한다. "노력하면 성공한다"고. 하지만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 일용직 노동자들은 아무리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왜일까?

신자유주의는 이 문제의 원인을 '개인 탓'으로 돌린다. 울리히 브렉과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를 자기 책임화(responsibilization)라 부르며, 구조의 결함을 개인의 부족함으로 환원한다고 지적했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프레카리아트(precarité, 저임금 저숙련 불안정 무산계급)는 바로 이런 사회적 불안정이 만든 계급이다.

이들은 안정된 직업을 갖지 못하고, 끊임없이 생존을 걱정하며 산다. 플랫폼 노동자는 언제 계약이 끊길지 몰라 불안하고, 일용직은 일감이 끊기면 곧장 생계가 위협받는다. 이러한 틈을 자본은 치밀하게 이용한다.

문제는 게으름이 아니라, 구조 자체가 인간다운 삶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본은 규칙도 만든다... 착취의 세계화

반면 자본을 보유한 사람들은 전혀 다른 세계에 산다. 그들이 하는 '노력'은 투자 타이밍을 맞추는 정도다. 돈이 돈을 벌고, 그 자본은 다시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데 사용된다. 토마 피케티의 'r > g'는 이 현상을 정량적으로 보여준다. 즉 자본 수익률(r)이 경제 성장률(g)보다 높은 구조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드러낸다.

자산이 있는 자는 더 부자가 되고, 자산이 없는 자는 아무리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여전히 자신을 '공정한 경쟁'이라 주장한다.

이 구조는 루이 알튀세르가 말한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를 통해 유지된다. 교육, 언론, 법, 종교는 자본주의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인식시킨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평등을 구조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받아들인다.

더 큰 문제는 자본주의가 개인을 넘어 환경과 국제 질서마저 파괴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원 거래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착취는 개발도상국의 터전과 생계를 빼앗는다. 환경 오염, 저임금 노동, 정치적 종속은 자본주의 세계화의 산물이다.

소말리아 해적은 그 전형이다. 해양 오염과 불법어업으로 생계를 잃은 어부들이 해적이 되었지만, 국제사회는 그들의 배경 대신 폭력만을 문제 삼았다. 그들이 왜 그렇게 됐는지는 관심 밖이다.

이처럼 자본주의는 인간의 고통을 숫자로 환산하고, 환경 파괴를 비용으로 치부하며, 대가를 약자에게 전가한다. 정의는 과정뿐 아니라 결과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롤스의 지적이 다시 떠오른다.

지금, 질문할 시간이다

개인의 이기심은 미덕으로 둔갑하고, 공동체의 연대는 시대착오로 취급받는다. 이것이 신자유주의 시대 자본주의의 민낯이다. 끊임없는 경쟁과 자기 책임이라는 강박 속에서 우리는 공동체의 미래를 잃고 있다.

기후 위기, 불평등, 증오, 전쟁, 빈곤… 이 모든 문제는 현재의 경제 시스템이 남긴 후과다. 지금 우리는 물어야 한다. 이 체제가 과연 지속 가능할 것인가? 이대로 인간 사회는 존속 가능한가?

'공정', '노력', '자유', '성공'이라는 말들이 실제로 어떤 의미로 기능하고 있는지를 되짚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자연스럽게 생겨난 체제가 아니다. 만들어진 만큼, 바꿀 수도 있다. 지금이야말로 묻고 상상해야 할 시간이다. 정말 이대로가 최선인가? 정말 다른 선택지는 없는가?

무너져버리기 전에,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김명곤 기자: 코리아위클리-플로리다 koreaweeklyfl@gmail.com )

출처 : 동포저널 (DONGPOJOURNAL)(https://www.dongpo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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