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플라자글로벌 베이징=특파원】중국 주요 대도시를 중심으로 실직자나 이직 준비 중인 청년층 사이에서 이른바 ‘출근하는 척’ 문화가 새로운 생존 방식으로 확산되고 있다.
베이징, 상하이, 항저우 등지에서는 실제로 ‘출근하는 척 유한회사(上班体验公司)’가 창업되었으며,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실제 회사처럼 출입, 책상 배정, 회의, 점심 제공까지 가능한 가상 직장 환경을 제공한다.
이들은 명함과 사원증까지 갖춘 ‘가짜 직원’이지만, 겉모습은 여느 사무실과 다를 바 없다. 일부 공간에서는 모의 업무 수행이나 가짜 상사의 지시까지 연출되며, 프리랜서나 공무원 시험 준비생 등도 함께 입주해 직장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같은 트렌드는 높은 청년실업률과 불안정한 노동시장, 그리고 가족과 사회가 기대하는 ‘성공의 프레임’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중국 당국은 2024년 기준 도시 청년(16~24세) 실업률을 14.9%로 발표했지만, 민간조사에서는 그 수치가 20%를 훌쩍 넘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항저우에 거주하는 20대 여성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집에서는 여전히 직장이 있는 줄 안다. 출근하는 척이라도 하지 않으면 정신적으로 버티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하는 척’ 사무실에는 실직 사실을 가족에게 숨기기 위한 ‘연막 출근’ 수요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최초로 이 사업 모델을 도입한 창업자 첸한저우(陳杭州)는 “출근이라는 형식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라며 “출퇴근과 일과 시간의 루틴을 통해 삶의 질서를 지킬 수 있다”고 밝혔다.
서비스 요금은 하루 30위안(약 5,900원) 수준이며, 무료 와이파이·커피·점심 등이 포함된다. 30일 이상 연속 출근 시 할인 혜택이나 ‘개근상’도 주어져, 스스로 일상을 복원하려는 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현상을 ‘가짜 직장 중독’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대다수 이용자들은 이를 “정서적 복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퇴사 후 창작 영감을 얻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는 한 토크쇼 작가는 “이곳에서 느낀 소속감은 이전 직장보다 더 따뜻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출근 코스프레’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청년층이 현실의 불안과 사회적 시선 사이에서 선택한 방어 기제라고 분석한다.
중국사회과학원 노동연구소 왕펑(王峰) 박사는 “중국은 여전히 전통적 성공 모델을 강하게 요구하는 사회”라며 “직장 없는 청년은 실패자로 낙인찍히는 분위기 속에서, 이들은 스스로 삶의 궤도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가짜 직장, 가짜 회의, 가짜 리더.
모든 것이 ‘연기’지만 그 속에서 청년들은 실제보다 더 진지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지켜내고 있다.
이 시대, 누군가는 ‘진짜 일자리’보다 ‘출근하는 척’이 더 절실한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