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같은 하루를 살아가지만, 결코 같은 삶을 느끼며 살지는 않는다. 같은 아침 햇살을 받고, 같은 도로를 지나며, 같은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아도 사람마다 마음에 담는 장면은 다르다. 누군가는 흐린 하늘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누군가는 그 너머에 있을 햇살을 기다린다. 누군가는 만남 속에서 상처와 서운함을 기억하지만, 또 누군가는 그 만남 자체를 귀한 인연으로 받아들인다.
오늘을 바라보는 데에는 두 개의 시선이 있다. 하나는 부족한 것과 잃은 것, 이루지 못한 것에 먼저 머무는 시선이다. 다른 하나는 이미 내게 주어진 것과 지금 누리고 있는 것에서 감사와 가능성을 발견하는 시선이다. 현실은 하나일 수 있으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에 따라 삶의 무게와 방향은 크게 달라진다.
부귀와 명예, 사랑과 행복, 그리고 성공의 기준도 마찬가지다. 많은 재산을 가졌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며,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모두가 존경받는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넉넉하지 않은 형편 속에서도 하루를 성실히 살아가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일 수 있다.
성공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결과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후회보다 감사가 많고, 오늘의 삶을 소중히 여기면서 내일을 준비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성공이다. 남보다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끝없는 비교와 경쟁 속으로 들어간다. 비교는 때로 자신을 성장시키는 자극이 되지만, 지나치면 삶의 기쁨을 빼앗고 마음을 가난하게 만든다.
물론 삶이 언제나 감사와 희망만으로 채워질 수는 없다. 누구에게나 뜻대로 되지 않는 날이 있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가 있다.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를 받기도 하고, 피할 수 없는 시련 앞에서 좌절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패와 어려움이 곧 삶 전체의 실패를 뜻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시련 앞에서 자신을 어떻게 대하느냐이다.
주어진 환경을 탓하고 자격지심과 피해의식에 갇히면 삶은 점점 더 좁아진다. 모든 원인을 타인과 세상에 돌리기 시작하면, 결국 자신의 삶을 바꿀 힘도 잃게 된다. 누구에게나 억울한 일은 있고,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다. 하지만 그 불행에 오래 머물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딛고 다시 일어설 것인지는 결국 자신의 선택과 태도에 달려 있다.
자중(自重)은 자신을 함부로 낮추지 않고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는 태도다. 자애(自愛)는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는 마음이다. 자존감은 타인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을 존중하고 자신의 책임을 다할 때 자라난다. 자긍심 역시 거창한 성취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오늘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해내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원칙을 지키며,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넬 수 있을 때 우리의 내면은 더욱 단단해진다.
부족함 속에서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있다. 반면 풍요 속에서도 자신을 둘러싼 담장만 바라보며 불평하는 사람도 있다. 행복은 가진 것의 크기로만 판단되지 않는다. 이미 가진 것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고, 얼마나 감사한 마음으로 누릴 줄 아는가에 따라 마음의 부요함은 달라진다.
아침에 눈을 뜰 수 있다는 것,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다는 것,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다는 것,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생각을 글로 남길 수 있다는 것. 우리는 너무도 당연한 것들을 잃고 난 뒤에야 소중함을 깨닫곤 한다. 그러나 진정한 지혜는 잃은 뒤에 후회하는 데 있지 않고, 잃기 전에 감사하는 데 있다.
가족과 친지, 친구들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도 결코 당연하지 않다.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 쉽게 소홀해진다. 정작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따뜻한 말을 아끼면서도, 멀리 있는 사람의 평가와 인정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인생의 끝에서 남는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았는가보다, 얼마나 진심으로 사랑하고 사랑받았는가일 것이다.
삶은 유한하다. 어젯밤 잠들었다가 오늘 아침 다시 눈을 뜨는 일도 사실은 큰 축복이다. 누구도 내일을 장담할 수 없으며, 오늘이라는 하루는 다시 오지 않는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 사이에서 정작 가장 소중한 현재를 놓치기 쉽다. 그래서 우리는 더 자주 오늘을 돌아보아야 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과 햇살, 거리의 사람들, 도로 위를 오가는 차량, 손안의 휴대전화로 생각을 기록할 수 있는 순간까지도 모두 살아 있음의 증거다.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나눌 대화,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 갈 작은 변화 역시 소중한 삶의 일부다.
특히 급변하는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는 기술의 발전만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은 삶을 편리하게 만드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어야 한다. 변화는 일부만을 위한 경쟁이 아니라, 서로의 강점을 연결하고 함께 성장하는 길이 되어야 한다. 기술이 인간을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가능성을 넓히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이러한 생각 속에서 나의 모토인 수처작주(隨處作主),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어느 곳에 있든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되 자신의 중심과 원칙을 잃지 않는 삶이다.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무조건 맞추고 따르는 일이 아니다. 자신의 소신을 지키면서도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더 나은 길을 찾는 일이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편의와 이익을 위해 자신의 존엄과 신념을 쉽게 내려놓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수처작주 화이부동,
어느 곳에 있든 주인이 되되, 타인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삶!
오늘도 부족한 것보다 이미 가진 것을 먼저 바라보고, 불평보다 감사의 말을 선택하며, 내일의 걱정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과 오늘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자 한다. 지금 이 순간을 감사한 마음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행복한 삶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이다.

[권세준 교수]
(프로필)
문학박사
동국대 법무대학원 (디지털자산 법무전공) 책임교수
한국디지털자산학회 회장
사단법인 4월회 사무총장
예천문화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