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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버의 법칙’
  • 이윤낙 발행인
  • 등록 2023-11-03 16:48:43
  • 수정 2024-02-28 16:4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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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펜싱국가대표 남현희씨의 재혼 상대로 발표되었던 사기피의자 전청조씨의 “I am 신뢰에요”가 패더리로 인기를 끌고 있는 기현상에 마음이 착찹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고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간다는 뉴스가 넘쳐도 덤덤하기만 하다. 한동안 온 나라를 떠들석하게 했던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조용해졌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집어넣으면 깜짝 놀라서 뛰쳐나오지만, 차가운 물속에 놓아두고 조금씩 열을 가하면 조용히 있다가 서서히 죽게 된다. 이는 물이 조금씩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감각도 마찬가지로 기존의 자극보다 일정비율 이상 더 큰 자극이 주어져야만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는데, 독일의 생리학자 베버는 이 법칙의 힌트를 얻었다. 300그램의 추를 오른손에 들고 있을 때 왼손에 305그램의 추를 들고 있어서는 그 차이를 쉽게 알 수 없다. 306그램 이상의 무게가 되어야 왼손의 추가 더 무겁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또 오른손에 든 추가 600그램이 되면 이번에는 왼손의 추가 612그램이 되어야 비로소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즉 두 배 이상의 자극이 느껴져야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같은 종류의 두 자극을 구별할 수 있는 최소 차이는 자극의 세기에 비례한다'는 '베버의 법칙'이다. 밤에는 작은 촛불도 밝게 느껴지지만 낮에는 형광등을 켜도 잘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다.

 

요즘 전쟁과 각종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으니 웬만한 사건은 그냥 덤덤하게 느껴진다. 금융사건이라면 몇억, 몇십 억은 일상적으로 보아온 것이니 적어도 몇백 억은 되어야 심각하게 느끼게 된다. 50억 퇴직금을 받았다고 해도 그렇게 요란스럽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전청조씨의 사기행각보다는 문구 하나가 주목을 받는지도 모르겠다.

 

군인들이 힘들게 훈련을 하는 것도 베버 효과를 노린 것인데, 힘들게 훈련하고 나면 실제 전투가 벌어져도 그리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회사나 조직에서도 눈엣가시 같은 사람이 있을 때 그를 쫓아내면 누구나 그가 미운털이 박혀서 쫓겨나는 거라고 눈치 챌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과는 상관없는 부서에서 먼저 인원감축을 단행한 후 쫓아내면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베버의 법칙은 정치적으로도 종종 이용한다. 집권자들에게 불리한 사건이 터지면 다른 더 큰 사건을 터뜨려 소위 물 타기로 무감각하게 만든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각종 대형 이슈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재명 수사는 이것 저것해서 1년 6개월 동안 검찰발 보도가 홍수를 이뤘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 무감각해져 이젠 별 관심이 없어졌다. 159명의 생목숨을 잃은 이태원 참사나 오성 지하도 참사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쉽게 뜨거웠다 금방 식는 냄비 근성도 한 몫 기여한다. 정치가 실종되고 정치관련 뉴스를 안 본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어지간한 이슈는 취급조차 받지 못한다. 옳고 그름의 경계가 모호하고 진영에 사로잡혀 확증 편향을 가진 사람들만 늘어나는 시대이다. 고금리 고물가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일자리 마저 점점 줄어 서민들의 한숨만 더하는 시대를 무감각하게 '베버의 법칙'처럼 살아간다.


[더플라자글로벌=이윤낙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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