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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냉전, 위기의 한국경제
  • 이윤낙 발행인
  • 등록 2023-06-06 16:29:26
  • 수정 2024-02-28 16:4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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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금년 누적 무역 적자가 300억 달러(한화 40조원)를 눈앞에 두고 있다. 무역으로 성장해왔고, 성장해야 하는 우리나라 경제에 빨간 불이 켜진 것이다.

 

무역 적자의 가장 큰 원인은 중국이다. 1992년 9월 한중 수교 이후 30년 동안 돈을 번 중국이 무역 흑자국 1위에서 적자국 1위가 됐다. 30년 동안 한 번도 없었던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1991년 소련의 붕괴로 경쟁자가 사라진 미국은 팍스 아메리카나를 외치며 전 세계 유일 초강국이 됐다. 미국이 주도한 세계무역기구, WTO를 통해 전 세계 무역 장벽을 낮춰가며 세계화도 속도를 냈다..

 

중국도 개혁 개방을 내세우며 국가 주도형 경제로 빠른 속도로 성장, 미국을 긴장시켰다. 1980년대 말만 하더라도 중국의 국내총생산, GDP는 미국의 6%에 그쳤지만, 2021년 약 80%까지 성장하며 미국을 추월하는 건 시간 문제가 됐다. 그러자 미국이 전방위적 중국 견제에 나서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연구진은 반도체와 인공지능(AI), 5세대 이동통신(5G), 양자컴퓨터, 바이오기술, 친환경에너지 등 6개 핵심 기술 분야에서 중국이 이미 1등을 차지했거나 10년 안에 미국을 제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중국이 반도체 굴기로 제조와 설계 영역에서 미국을 곧 따라잡을 수 있는 심각한 경쟁자가 됐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군사, 우주, AI 등 미래 먹거리와 직결되는 최첨단 분야에서 중국이 앞서는 건 용인할 수 없다고 나선 것이다.

 

세계 첨단 반도체 시장은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이 꽉 잡고 있다. 설계와 장비는 미국, 생산은 한국과 대만, 소재는 일본이 나눠서 한다. 미국의 구상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과 대만까지 묶어 네 나라가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 이른바 칩4를 만들어 중국을 봉쇄한다는 전략이다. 

 

그러자 중국은 미국 주도의 반도체 편가르기에 거세게 반발하면서 반도체 수출의 절반 정도가 중국으로 나가는 한국, 그리고 중국 현지에 대규모 생산 기지가 있는 우리 기업들이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지난달 한미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나온 첫 질문은 미국 기자는 중국을 견제하자는 미국 압박 때문에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피해를 본다고 꼬집었다. 한국 걱정을 미국 기자가 할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 우리나라가 동참하는 것을 중국이 그냥 가만히 두고 보지만 않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일전 중국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려던 가수 겸 배우 정용화 씨가 베이징까지 갔다가 출연이 취소돼 그냥 돌아왔다. 네이버도 중국 내 접속이 차단됐다. 중국 당국이 한국에서 들어오는 상품에 한해 세관 검색을 강화하고 있다는 확인되지 않는 소문도 돌고 있다. 중국 지방정부의 모 비서장은 사석에서 “한국 정부는 중국에서 기업하는 한국인 생각은 하지 않는가?”라고 질문 한다.

 

언론에 따르면 2016년 주한미군 사드 기지 설치로 촉발된 '한한령'으로 인해 한국 기업들은 물론, K팝과 게임, 공연, 명동 거리와 면세점까지 모두 직격탄을 맞았다. 한한령 이후 3년간 관광 산업 피해만 21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사실 금년 초만 하더라도 시진핑 주석이 중국 광저우의 LG디스플레이 공장을 방문하면서, 기대감이 커졌다. 하지만 그 기대는 일주일 만에 사라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중국이 가장 민감해 하는 ‘대만 문제’를 언급한 게 갈등에 불을 붙였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 노력해 왔다. 이명박 정부는 중국을 전략적 협력동반자로 격상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중국 전승절 기념 열병식까지 참석했다. 문재인 정부는 3불 정책, 즉 사드 추가배치, 미국 미사일방어체계, 한미일 군사동맹, 이 세 가지를 하지 않겠다는 정책을 폈다. 하지만 이런 균형 외교가 윤석열 정부 들어 사실상 사라졌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의 중국 봉쇄전략인 인도태평양 전략과 꼭 닮은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까지 내놓고, 일본과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중이다.

 

미중 사이의 패권 전쟁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고 전략적이어야 할 외교를 윤석열 정부가 한쪽 진영에 서면서 다른 쪽 진영으로 설정한 그룹에 적대적인 국가가 되는 길을 택하고 있다. 

 

미국의 동맹국인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달 극진한 의전을 받으며 중국을 국빈 방문, 정상회담에서는 초대형 계약을 체결했다. 프랑스 항공기 제조사인 에어버스 여객기 160대를 중국이 우리 돈 26조 원에 사기로 한 것이다. 프랑스는 실익을, 중국은 우군을 챙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마크롱 대통령은 귀국길에 기자들을 만나 "대만 문제로 중국과 갈등을 빚을 경우 유럽이 미국의 추종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동맹이 된다는 것은 속국이 된다는 뜻은 아니"라며 미국에 날을 세웠다. 미국의 영원한 우방 영국도 "중국과 관계에 문을 닫는 것은 그 누구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흑백 논리를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과 안보공동체로 묶여있는 유럽 정상들의 중국 방문은 줄을 잇고 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산체스 스페인 총리도 시진핑 주석을 만났다.

 

그렇게 동맹국들이 하나 둘씩 뒤로 실리를 챙기는 사이, 미국도 속도 조절에 나섰다. G7 정상회담이 끝난 뒤 중국 때리기를 주도해온 미국이 돌연 중국에 손을 내민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조만간 (미중 관계가) 해빙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겁니다."라며, 디커플링(decoupling), 그러니까 중국과 선을 긋고 적대시할 게 아니라 디리스킹(derisking), 위험을 줄이겠다고 했다. 하야시 일본 외무장관도 지난달 베이징에서 친강 중국 외교부장을 만나 중일 대화를 재개했다. 하지만 한중 고위급 대면 외교는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G20 정상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만난 이후 끊겼다. 미국과 일본은 앞으로는 싸우는 척 하면서 뒤로는 실리를 챙기는 외교를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중국과 러시아와 협력을 심각하게 저해하지 않는 수준에서 한미동맹과 한일 간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국익이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중요하지만 미래 한국에 있어서 핵심적인 이익이라고 할 수 있는 북핵 문제 해결, 그 다음에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그리고 북한의 급변 사태가 났을 때 원활하게 잘 수습하는 것, 평화 통일로 가는 것. 이 어느 부분에 있어서도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를 한다면 달성할 수가 없다.

 

미중 패권전쟁으로 세계 경제는 큰 전환기를 맞고 있는 지금이지만, 세계 강대국들은 어느 나라도 단순한 가치나 이념 혹은 그걸 가지고 나라의 어떤 운명을 좌지우지하지 않는다. 그래서 실리를 반드시 챙기게 돼 있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세계 질서가 변동 상황이 워낙 크고 미래는 불확실하고 그 다음에 새로운 공급망이 짜여져야 되고 이런 상황 속에서 단순한 어떤 안보적인 측면의 계산만 가지고 위협 균형을 추구하다가는 나라 경제가 먼저 망하게 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더플라자글로벌=이윤낙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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