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뗏"이라 부르는 베트남의 설날 아침은 너무나도 고요하다.
밤 늦게까지 폭죽을 터트리며 귀신을 쫓다가 다들 지쳐 쓰러진 걸까?
오늘따라 아침마다 울어 제끼던 수탉마저 울음을 숨죽이는 고요함.
이른 아침부터 오토바이 소리로 시끌벅쩍하던 골목 어귀가 심지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까지 들려오는 아침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조상 귀신을 불러 자정에 제사를 지내고 폭죽을 터트려 불러온 귀신을 쫓아 보낸다.
한국의 설날과는 맥락을 같이 하지만 사뭇 다른 풍경이다.
설을 맞이하는 모습도 다르다.
집집마다 다복을 상징하는 꽃이 핀 복숭아나무나 금귤과 교잡종인 칼라만시 화분을 들여놓고 집안을 온통 꽃으로 장식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크리스마스에 깜빡이는 장식 등을 다는데 중국과 베트남은 설날에 장식을 한다.
베트남하면 1992년에 개봉돤 영화 "인도차이나" 가 생각난다.
영화의 배경이 된 "응우옌 티 빈"은 베트남 공산화에 영향력을 끼친 여성 정치가이다.
나는 영화속 그녀 삶의 서사보다 프랑스 해군 장교와 뜨겁게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제일 먼저 기억에 떠 오른다.
어쩌면 이번 베트남 여행에서 나도 영화 주인공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뜨겁게 사랑을 나누고, 함께 하롱베이의 다도해와 석양을 바라보며 감동의 추억을 만들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아침부터 비가 오고 날씨가 흐리면서 그런 희망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
나는 어쩌다 처음부터 계획한 것도 아닌데 이곳까지 오게 된 걸까?
문득 정신을 차리니 마치 귀신에 홀린 것 같다.
술렁이는 마음 같아서는 인도나 캄보디아 등으로 또다시 훌쩍 따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같이 한 일행이 감기에 걸려 오늘 하노이로 들어가 내일 중국으로 떠나야 한다.
그리고 목적했던 비즈니스를 마무리 지어야 하는데 모두가 쉰다는 베트남 뗏(설날)에 택시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베트남은 이번이 처음 방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표정이 중국인들 보다 편안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어쩌면 앞으로 베트남에 자주 방문 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에서는 설날을 봄이 시작하는 날로 생각한다.
그래서 설날을 춘절이라 하고 봄이 시작 되는 날이라고 생각한다.
뭐 소한 대한이 다 지나고 며칠만 있으면 입춘이니 그리 부를 법도 한데, 그나저나 탄핵정국이 이어지는 어수선한 한국에는 언제나 봄이 올까?
<황문섭 특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