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 이후 중국의 대외 투자 성향이 뚜렷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과거 전 세계에서 부동산을 집중 매입하던 투자 방식은 점차 사라지고, 최근에는 한국 내 공장 설립과 산업단지 투자 등 제조업 기반의 직접투자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자본 유입을 넘어 한국 내 고용과 생산 활동으로 이어져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기존 한국 제조기업 입장에서는 예기치 못한 구조적 리스크를 초래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합법적’ 투자임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맞물려 한국산 제품이 제3국에서 불이익을 받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구성요소 중 하나인 알루미늄박을 둘러싼 미국 상무부의 규제 조치는 이러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은 지난 2017년부터 중국산 알루미늄박 제품에 대해 고율의 반덤핑 및 상계관세를 부과해 왔으며, 이후 2022년에는 한국으로 우회 수출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본격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결과, 한국 내 일부 기업이 중국산 알루미늄 시트를 단순 가공하여 미국에 재수출하는 구조가 확인되었고, 결국 2023년 말부터는 한국산 알루미늄박에도 중국산과 동일한 수준의 관세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이 조치의 계기 중 하나가 중국 기업의 한국 공장 설립이라는 점이 명시되면서, 제조업 투자에 대한 외국의 인식이 단순하지 않음을 드러냈다.
실제 사례로 언급된 K사는 2019년 연매출 2천억 원 달성을 목표로 한국 공장을 가동했으며, 2024년 그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서 창출한 부가가치는 전체 매출의 3%에 불과했고, 이는 국내 기업인 삼아알미늄㈜의 부가가치율(33%)과 비교해도 10배 이상 낮은 수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산’으로 동일한 관세율을 적용받는 역설이 발생했다.
합법적 투자로 인한 리스크 외에도, 국내 제조업계는 중국산 저가 제품의 유입으로 인한 구조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가격경쟁력이 떨어진 한국 기업들이 제조업에서 철수하거나 유통업으로 전환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일부는 ‘한국산 둔갑 수출’이라는 유혹에 노출되기도 한다.
관세청이 2025년 4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미국 및 제3국으로의 원산지 조작 적발 건수는 총 176건에 달하며, 적발 금액은 약 4,675억 원에 이른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고율 관세 정책을 재개하면서 원산지 조작 사례는 다시 증가 추세에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관세청은 ‘무역안보특별조사단’을 신설하고 집중 단속에 나섰다. 자유무역의 원칙이 점차 관리무역 체제로 전환되고 있는 국제 무역환경에서, ‘한국산’이라는 신뢰를 지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해졌다.
그간 효율성과 원가 절감을 위해 극도로 분업화되어 있던 글로벌 공급망 구조는 팬데믹, 일본 수출규제,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 등을 거치며 재검토되고 있다. 한 제품의 1%에 불과한 소재 부족이 전체 밸류체인을 마비시킬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소재·부품·장비 전반에 걸쳐 공급망 리스크 관리가 핵심 화두로 부상했다.
특히 미-중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며 세계 시장이 블록화되고 있는 가운데, 수출 대상국이 제한되는 현실은 분업화 기반 기업들에게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이로 인해 생산의 전주기를 통제할 수 있는 ‘수직계열화’ 또는 핵심 공정의 내재화가 대안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전기차의 주요 소재 공급망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들의 최근 영업이익률이 급락하는 등 시장의 신호는 명확하다. 안정성과 회복력을 갖춘 공급망 확보 없이는 생존조차 담보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한국 제조업은 지금, 구조적 전환점 앞에 서 있다.
정리: 더플라자글로벌 산업경제부
참고 자료: KOTRA, 관세청, 미 상무부 연방관보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