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발행인 칼럼] 술, 우리 삶 속의 이중성
  • 이윤낙 발행인
  • 등록 2024-05-15 13:50:30
  • 수정 2024-05-15 14:59:55
기사수정

가난한 농사꾼이셨던 아버지는 애주가셨다. 물론 힘든 농사일을 술 힘(?)에 의존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전적으로도 술을 좋아하셨던 것 같다. 소주 원액을 사서 물로 희석시켜 항아리에 담아놓고 들락날락 즐기셨다. 30도 짜리 안동 제비원 소주를 대병으로 마실 정도였으니 주량이 쎗다. 결국 힘든 농사일에 지나친 음주로 인한 술병으로 54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필자 역시 아버지의 이런 유전자를 물려 받아 주량이 쎄다. 한때 40도 되는 바이주를 2병 정도 넉넉히 마셨으니 말이다. 신앙으로 인해 지난 25년간 술을 멀리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이 글을 쓰지 못했을지 모른다.

 

아주 오래 전 상영된 ‘최종 분석(Final Analysis)’ 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킴 베신저 여사는 단 한 모금의 술만 마셔도 상스러운 욕을 하며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발광에 가까운 주정을 한다. 진정제를 맞고 나서야 주정이 멈추는 그녀에게 의사는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말라고 진단한다. 그녀는 이러한 진료 차트를 이용해 남편을 계획적으로 살해하는 것에 주정을 이용했다. 자기의 살인 행위가 우발적인 주정 상태의 결과로 그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고 위장을 해 결국 배심원들의 무죄 판결을 받아내고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곧 풀려나는 스토리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술에 취해 저지른 죄라고 해서 영화처럼 쉽게 무죄 선고를 받지는 않는다. 실제 강력범죄자들은 긴장 완화를 위해 범행 전에 술을 마신다는 분석도 있다. 영화가 다소 과장되고 극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실제 보통 사람보다 빨리 취하는 체질도 있다. 어떤 사람은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고 가슴이 뛰어 체질적으로 술을 못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필자의 한 친구는 술을 먹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로 많이 마시지만 건강검진을 해 보면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한국인처럼 술잔을 돌려가며 마시는 습관이 없다. 자기가 마시던 잔을 상대방이 마시게 하는 문화는 간염이나 전염성 질환을 옮길 수 있고, 서로 술 마시는 것을 부추켜 과음을 하게 된다. 그래서 간질환이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이라는 통계도 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 ‘주달’이라고 해서 알코올 중독에 의한 간질환이 기록되어 있는데, 황달(黃疸) 가운데 가장 중(重)하며 가장 흔하다고 한다. 알코올 중독인지 여부를 알아보는 체크 리스트가 있는데, 눈동자에 노란 띠가 둘러져 있는 듯 보이며, 코가 빨갛고 몸에 여기 저기 멍이 들어 있는 사람은 중독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또, 매일 술을 마시지 않으면 견딜 수 없거나 자주 폭주를 하거나 아침에 일어나 술로 술기운을 풀겠다며 해장술을 하는 사람도 알코올 중독자임이 분명하다.

 

예전과 달리 요즘은 젊은 여성을 비롯해 많은 여성들도 술을 즐긴다. 특히 경기가 위축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술에 의존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술을 마시면 처음에는 측은지심이 생겨 눈길이 부드러워지고, 선비의 혼이 나타나 시인묵객이 되기도 한다. 긴장이 풀어지고 주변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세상만사 모든 시름을 잊게 된다. 그러나 두잔 세잔 거듭되다 보면 술잔이 엎어지고 큰소리가 오가며 심할 때는 코피가 터지기도 하는 망나니 상태가 되기 마련이다. 술의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음을 알아야 하지만 술이 그것을 깨닫도록 내버려두지 않으니 그것이 문제이다.

 

술은 우리의 삶 속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중적인 요소이다.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고 적절히 다루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술이 우리를 지배하거나 통제해서는 안 되며, 우리가 술을 통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굳은 의지를 동원해야 한다.


0
dummy_banner_2
dummy_banner_3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